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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9.1 ⓒ 뉴스1 유승관 기자"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610/12/NEWS1/59040kyoo.jpg" data-org-width="1400" dmcf-mid="BpkvoKCEtI"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10/12/NEWS1/59040kyoo.jpg" width="658"> 지난 2023년 9월 1일 간토대학살 100주기를 앞두고 서울 용산구 식민지역사박물관에서 간토대학살 100년 기획전 '은폐된 학살, 기억하는 시민들'이 열리고 있다. <자료사진> 2023.9.1 ⓒ 뉴스1 유승관 기자 마이니치신문은 지난 6일 자에서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 연구자 고토 아마네(後藤周)가 당시 일본 정부 공문서를 분석한 결과라며 이같이 보도했다. 마이니치에 따르면 고토가 분석한 핵심 자료는 '선고비수(鮮高秘?) 제22호'라는 제목의 공문서다. 이는 1923년 11월 당시 가나가와현 지사였던 야스코치 아사키치가 내무성의 요청에 따라 작성한 것으로서 간토대지진 이후 조선인과 중국인의 범죄 및 보호 상황 등을 조사한 약 50쪽 분량의 보고서다. 팡 게임 먹튀 이 보고서는 재일 역사학자인 고(故) 강덕상 전 히토쓰바시대 교수가 고서。에서 발견해 2023년 관련 자료집을 통해 공개됐다. 고토에 따르면 간토대지진 당시 가나가와현에서 조선인이 저지른 것으로 조사된 범죄는 14건이었다. 이 가운데 9건은 용의자가 일본인 군중에게 살해됐고, 이름이 확인된 용의자는 5명이었다. 범죄 내용이 명확하게 기록된 사건은 절도 4건이 전부였다. 그러나 이들 사건도 1명 또는 2~3명이 저지른 것으로서 조직적 범죄나 집단 폭동에 해당하는 사건은 없었다. 간토대지진 직후 일본에선 '조선인 수백 명이 습격해 온다'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풀었다' '조선인이 방화한다'는 등의 유언비어가 퍼졌다. 그러나 당시 당국 조사에서도 이러한 소문을 뒷받침할 집단 범죄는 확인되지 않았다는 게 고토의 설명이다. 반면 일본인 군중이 조선인을 살해하거나 다치게 한 사건은 80건에 달했다. 이들 사건으로 조선인 170명이 숨지고 14명이 다친 것으로 기록됐다. 피해자는 모두 남성이었으며, 이름이 확인된 사람은 34명에 그쳤다. 조선인 대상 살상 사건 등 80건 가운데 가해자가 특정된 사건은 10건뿐이었다. 이 중 조선인 살인이나 상해 혐의로 실제 검거된 사건은 살인 2건과 상해 1건 등 3건에 불과했다. 일본 내무성 자료에서도 가나가와현의 관련 사건 검거율은 유독 낮았다. 무료황금성 당시 일부 지역에 계엄령이 적용된 도쿄부와 사이타마현의 검거율이 각각 97.5%, 100%였고, 지바현도 46.1%에 달했지만 가나가와현은 5.1%에 그쳤다. 고토는 "학살 사건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범인을 검거하지 않고 재판에 넘기지 않는, 근대국가에서 있어선 안 될 심각한 처리가 이뤄졌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는 일본 정부가 조선인 학살을 주도했다는 주장엔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학살 당시 '조선인을 죽여도 상관없다'는 소문이 퍼졌고 일부 경찰관이 현장에서 살인을 용인하거나 지시했으며 군에 의한 살상도 있었음은 분명하지만, 국가 전체가 조직적으로 학살을 주도했다는 해석은 여러 역사적 사실과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고토는 특히 일본 정부가 현재까지 조선인 학살에 관한 공식 기록을 확인할 수 없다는 입장을 유지하는 .을 비판했다. 간토대지진 100주기를 앞둔 2023년 8월 30일 마쓰노 히로카즈 당시 일본 관방장관은 "정부가 조사한 범위에선 (조선인 학살의) 사실관계를 파악할 수 있는 기록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밝혔었다. 이에 대해 고토는 "내무성과 사법성, 계엄사령부, 조선총독부, 각 지방자치단체와 경찰 등이 조사한 보고서가 여러 종류 존재한다"고 반박했다. 1923년 9월 1일 도쿄·요코하마 등 일본 간토 지역에선 규모 7.9의 대지진이 발생해 10만 명 이상이 사망하거나 실종됐다. 특히 당시 유언비어가 확산하면서 일본인 자경단과 군인, 경찰 등에 의해 조선인 수천 명이 학살됐다. 그러나 정확한 조선인 피해 규모는 여전히 파악되지 않고 있다. 기억하는 시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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