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유리동물원’에서 딸 로라(정운선·왼쪽)와 엄마 아만다(최정원).
미국 연극 황금기를 이끌었던 극작가 테네시 윌리엄스의 자전적 연극 ‘유리동물원’은 분명 비극이다. 화려한 과거에 집착하며 가족을 옥죄는 엄마 아만다, 늘 깨질 듯 연약한 다리 장애를 가진 딸 로라, 시인을 꿈꾸지만 생계를 책임져야 해 불만인 아들 톰까지. 윌리엄스가 그린 가족의 모습은 제목의 ‘유리동물원’처럼 균열되고 붕괴되지 않는 게 이상할 정도로 위태롭다.
그런데 배우 최정원은 “절망 속에서 희망이 피어난다. 나만의 아만다를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언제나 에너지가 넘치는, 그래서 절망에서도 능히 희망을 찾아내 관객들에게 줄 수 있을 것 같은 최정원을 개막을 앞둔 지난 13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만났다. 그는 만나자마자 자신과 이번 작품을 준비하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쏟아냈다.
최정원은 “테네시 윌리엄스가 쓴 대사는 버릴 것도 더할 것도 없다”고 전제하면서도 “아무리 대작가가 썼어도 나를 버리고 윌리엄스만의 아만다가 될 순 없다”고 단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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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 “이제까지 내가 읽었던 책, 봤던 공연과 영화들, 만났던 사람들과 동료 배우들과의 호흡이 있어 내가 지금 아만다를 만날 수 있는 것”이라며 “나란 사람과 작품 속 캐릭터, 이 둘의 밸런스를 맞춰나가는 게 즐겁다”고 말했다.
그가 말하는 ‘최정원식 아만다’는 어떤 모습일까. 1930년 미국 대공황기 세인트루이스. 처절한 생존의 시대에 남편에게 버림받은 아만다는 주변을 의식해 ‘가면’을 쓴 인물이다. 자식들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딸을 억지로 결혼시키려고 하고, 문학소년인 아들을 구두공장으로 내모는 엄마. 최정원의 말마따나 “이기적”이고 “어쩌면 제일 아픈” 인물이다. 딸에게 ‘넌 불구가 아니다’라고 현실을 부정하다가 종국에 ‘너는 불구’라고 대놓고 상처를 주기도 한다. 신유청 연출도 “。. 자신의 이익을 위해 눈이 멀어가는 장님이 돼가야 한다”고 최정원에게 주문했다고 한다.
그렇지만 최정원은 “종국에는 가면을 벗고 그 상처를 온전히 드러낼 수 있을 것 같다”며 “관객에게 희망과 용기를 건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마지막 장면을 언급하며 “늘 딸을 케어하는 모습을 보였던 아만다가 오히려 딸에게 기대는 식으로 가려고 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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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캐릭터 해석은 최정원이 연극에 임하는 마음가짐에서 비롯됐을지 모른다. 그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진짜 내 자식의 모습을 들여다보지 못하는 엄마다. 100년 전 쓰인 작품이지만 지금 엄마와 자식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아 관객들이 공감할 것”이라고 말했다.
“무대에 선 배우는 ‘작은 철학자’라고 생각해요. 누군가의 인생에 빛이 돼주고, ‘살아볼 만하다’라고 말해주는 사람이지요. 무대 위에서 상처를 드러내고 모든 이들에게 용기를 드리고 싶습니다.”
대한민국 1세대 뮤지컬 배우로서 지금까지 최고의 디바를 지켜온 최정원은 주기적으로 연극에 도전한다. 최정원은 “뮤지컬은 내가 알고 있는 나를 재확인하는 성취감이 있다면, 연극은 내가 모르던 나를 만나게 되는 여행”이라며 “이번 작품은 특히 나 자신을 돌아보고 치유하는 진짜 여행이 되는 것 같다”고 눈을 반짝였다.
인터뷰가 이어지면서 의문이 들었다. 왜 거침없이 자신을 발산하는 최정원에게 가면 뒤로 숨는 아만다 역을 맡겼을까. “화려했던 과거가 있는 이미지를 원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저는 과거보다 지금 제 모습이 더 아름다운 것 같은데 어쩌죠? 하하!”
17일부터 11월 22일까지 예술의전당 CJ 토월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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