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조선일보 문화부 신정선 기자입니다. ‘그 영화 어때’ 237번째 레터는 21일 개봉하는 연상호 감독의 신작 ‘실낙원’입니다. 여러분은 창작물의 유사성을 어디까지 용인하시나요. 특히 결말이 매우 중요하고, 결말의 메시지가 작품 전체를 좌우하는 경우라면요. ‘실낙원’ 시사를 보기 전, 원작 소설, 그러니까 연상호 감독이 원안자로 올라있는 ‘블랙 인페르노’를 읽다가 멈칫했습니다. 예전에 읽은 한 소설이 떠올라서요. 결말이 충격적이라 꽤 화제가 됐던 소설인데, ‘블랙 인페르노’의 결말과 결말에 이르는 결정적 동기가 그 소설과 무척이나 흡사했습니다. 영화는 어떨지 궁금해 부산과 서울 시사를 모두 갔습니다. 저의 결론은 아래에서 말씀드릴게요. 들어보시고 여러분도 판단해보시길. 그 어느 때보다 오리지널리티가 중요한 시대니까요.
영화 '실낙원'은 윌리엄 랜데이의 소설 '제이컵을 위하여'와 결말 설계가 매우 흡사합니다. 미스터리 스릴러에서 결말이 차지하는 비중을 생각한다면 나머지 설정이 아무리 다르다 해도 씁쓸한 것은 어쩔수 없네요. 게다가 연상호 감독에 거는 기대가 크다보니./CJ ENM
지지난주 부산국제영화제 취재하러 내려 가기 전에 ‘블랙 인페르노’(2025)를 챙겨 읽었습니다. 연상호 감독의 ‘실낙원’이 기대작이라 원작은 어떨지 궁금해서요. ‘블랙 인페르노’는 ‘소설 오성은, 원안 연상호 류용재’로 표기돼 있습니다. 류용재 작가는 연 감독과 ‘괴이’ ‘반도’ 등을 같이 작업한 분입니다. 두 분의 아이디어를 오성은 소설가가 문장으로 푼 것 같은데, 굉장히 깔끔해서 술술 읽혔어요. 제목이 Black Inferno, 즉 검은 지옥인데, 소설에 등장하는 절벽 이름입니다. 그 절벽으로 떨어지면 끝을 알 수 없는 나락인데, 지명이기도 하고, 상징이기도 하고요.
‘블랙 인페르노’는 배경이 미국입니다. 엄마가 어린 아들을 캠핑 보내는데 단체버스 운전기사가 차를 통째로 납치하면서 아들을 포함해 동승한 아이들 모두가 실종됩니다. 절망하는 부모들 앞에 AI 기업이 나섭니다. AI로 아이들을 되살려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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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AI 아들에 정서적으로 의존하는데, 죽은 줄 알았던 아들이 몇 년 후 살아돌아옵니다. 행복해야하는데, 그녀 앞에는 끔찍한 어둠의 문이 열립니다.
그런데. ‘블랙 인페르노’ 뒷부분으로 가면서 어쩐지 어디선가 본 듯한 느낌이 서서히 들기 시작했습니다. 어, 이거 그 소설하고 어쩐지 비슷한걸? 제가 떠올린 작품은 미국 작가 윌리엄 랜데이(William Landay)의 소설 ‘제이컵을 위하여’(Defending Jacob)입니다. 미국에선 2012년, 국내에선 2013년에 나왔어요. 충격적인 결말로 미스터리 스릴러 팬들 사이에서는 꽤 회자됐던 소설입니다. “아니, 이렇게 끝내버린다고?”라는 반응이 많았죠.
영화 '실낙원'의 초반 장면입니다. 특수 안경을 쓴 엄마(김현주)가 AI로 살린 아들을 향해 다가가려 합니다. AI로 죽은 아이를 만난다는 줄거리, 앞으로 몇 편이나 더 나오게 될지./CJ ENM
‘블랙 인페르노’ 뒤로 가면서 기시감이 든 것은, 앞부분은 완전히 다르기 때문인데요, ‘제이컵’에는 당연히 AI 얘기는 없고, 납치도 없고, 부모 직업을 포함해 사건 전개 등도 판이하게 다릅니다. 그런데. 이런 류의 미스터리 스릴러는 결말이 핵심 아니겠습니까. 앞에 잔뜩 해놓은 이야기는 솔솔 빵부스러기죠. 결국 결말에서 할 그 얘기를 하려고 하나둘씩 뿌려놓는 것이고요. 우리가 미스터리 스릴러를 끝까지 읽거나 보는 것은 ‘이렇게 아슬아슬한 이야기를 작가가 어떻게 독창적으로 마무리할 것인가’에 대한 기대 때문입니다. 스릴러는 어떤 장르보다도 기대에 부응해야할 작가의 책무가 중요한 장르고요. 다 봤는데 결말이 허망하다던가(“전부 꿈이었다”는 무책임한 부류), 어디서 많이 듣던 얘기라던가, 앞뒤가 안 맞으면 배신감을 넘어 분노까지 드는 법이죠.
그렇다면 결말이 어땠기에 기시감이 들었느냐. 이 이후는 이번 레터의 성격상 ‘블랙 인페르노’와 ‘실낙원’, ‘제이컵을 위하여’의 결말이 들어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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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말이 중요한 작품들이기 때문에, 보실 생각이 있으시다면 보시고 나서 읽어주시길. 그럼, 결말 나갑니다. ‘제이컵’의 엄마는 엔딩에서 아들을 태우고 차를 운전해가다가 콘크리트벽에 그대로 박아버립니다. 전속력으로 질주해 동반자살. 원래 아들을 데리고 사립학교 면접보러 가던 길이었는데, 직전까지 평온한 듯 보이다가 갑자기 속력을 올려 정면충돌하고 그게 소설의 끝. 마지막 문장이 “그다음, 제이컵은 콘크리트 벽이 자신을 맞으러 날아드는 모습을 보았다.” 이렇게 끝납니다. 적다보니 처음 읽었을 때 놀랐던 기억이 아직도 나네요.
애플TV 시리즈 '제이컵을 위하여'에서 아버지 역으로 나온 크리스 에반스(왼쪽)는 아들의 무죄를 밝히기 위해 동분서주합니다. 사실은 그도 의구심이 드는데, 그의 아버지, 즉 아들의 할아버지의 유전자까지 검사를 받게 됩니다. 내 아들은 타고난 살인마인가. 원작 소설과 결말이 꽤 다릅니다./애플TV
약간의 부연설명을 하자면, 아들은 죽었지만 엄마는 살아난 걸로 소설 앞부분에서 알려주는 부분이 있긴 합니다. 요는, 엄마가 같이 죽겠다는 결심으로 차를 몰아 충돌했다는 건데, 왜 그랬냐면, 아들이 유전적으로 살인을 즐기는 사이코패스였기 때문입니다. 할아버지대에서부터 물려내려온 유전자를 타고난 아들이 학교에서 동급생을 죽였고, 그에 대한 아무런 죄책감이나 일말의 동요가 전혀 없고, 요행히 법망은 벗어났는데 다시 여자애를 죽였고, 엄마는 결국 결심합니다. 자신이 끝을 내야겠다고요.
‘제이컵’의 마지막 문단을 세 줄만 더. “그 찰나의 순간에 제이컵은 나를 떠올렸을 것이다. 그 아이를 품에 안고 그 아이의 눈을 들여다보던 나를. 그리고 어떠한 상황에서도 끝까지 내가 그 아이를 사랑했다는 사실을 이해했을 것이다.” 뒷부분에서 아들이 죽이는, 죽인 걸로 강하게 암시되는 여자애 이름이 호프(Hope)입니다. 작가가 무척 분명하게 밝힌 거죠. 희망이 사망해버린 엄마에겐 다른 선택이 없었다고.
즉, ‘제이컵’의 결말은 아들의 유전적 살인 성향을 엄마가 동반 자살로 끊어버리는건데, ‘블랙 인페르노’가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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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지로부터 이어지는 아들의 타고난 성향을 암시하고, 아들의 범죄 행각이 분명하게 드러나고, 엄마가 아들을 데리고 함께 죽습니다. 차를 몰고 절벽(블랙 인페르노) 아래로 떨어져서요.
'실낙원'에서 9년 만에 돌아온 아들 류선우 역의 배우 배현성입니다. 9년 전 캠핑버스에 탄 그 아이는 어디로 갔는지. 아니, 이게 본모습인지. 결론은 엄마가 냅니다./CJ ENM
결말이 중요한 장르에서 이 정도로 결말이 유사하다니. ‘블랙 인페르노’를 덮으면서 든 생각이었습니다. 영화는 어떻게 다를까 하면서 부국제 ‘실낙원’ 시사에 갔습니다. 금요일 밤에 하고, 토요일 오전에 연감독이 기자회견을 했습니다. 그 회견에서도 그랬고, 앞서 제작보고회나 다른 유튜브 출연 영상에서도 연 감독은 ‘실낙원’ 이야기의 출발이 어머니라고 여러 번 말했습니다. 어머니가 써준 메모에 있던 이야기를 돈주고 사서 ‘실낙원’을 만들게 됐다고요. 부국제 회견 때는 “어머니의 메모에 ‘실낙원’ 결말이 있었다”고 밝혔습니다.
이 지。에서 원작 ‘블랙 인페르노’와 영화 ‘실낙원’의 다른 。을 말씀드려야겠네요. 배경을 미국에서 한국으로 옮겨오기도 했고, 여러 부분이 변형됐습니다. 주인공 엄마(김현주)의 남편이자, 아들의 아빠가 전혀 언급되지 않습니다. 모르는 관객이라면 보다가 “저 집은 아빠가 없나” 하실수도. 아빠가 빠지면서 엔딩에 나오는 엄마의 충격적인 결심이 주는 서사적 효과가 크게 반감됐어요. 아마도 납치범인 운전기사가 아들의 성향을 알아봤다는 언급으로 암시가 됐다고 본 게 아닐까 싶은데, 아빠가 스치듯이라도 나왔어야 유전이라는 떨쳐낼 수 없는 굴레가 새겨지고, 엄마가 왜 그런 결심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해 비극성과 설득력이 더해질텐데. 유전 서사가 옅어지면서 ‘제이컵’과 유사성은 줄었는데, 대신 엔딩의 호소력도 그만큼 약해졌습니다.
또 ‘블랙 인페르노’는 이민자 문제가 좀 더 두드러지는데 ‘실낙원’은 옆집 아이가 조선족이라는 정도에서 그칩니다. 이민자 문제는 애초에 납치 사건, 납치범의 신분과 연결되기 때문에 좀 더 살렸으면 어땠을까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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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J ENM
‘블랙 인페르노’의 수직 절벽은 ‘실낙원’에선 수평의 깊은 어둠을 가진 탄광으로 바뀝니다. 같은 개념을 수직과 수평으로 교체하는 건 연 감독에게 친숙한 방식인 것 같습니다. 좀비 영화 ‘부산행’의 기차라는 수평 공간을, 또 다른 좀비 영화 ‘군체’에서는 수직의 고층 건물로 바꿨죠. ‘실낙원’은 폐탄광이 배경이라, 엄마가 아들을 데리고 탄광의 승강기를 타고 추락해 죽는 걸로 엔딩이 바뀝니다.
세 작품의 엔딩만 비교해 보겠습니다.
‘제이컵을 위하여’=엄마가 아들을 차에 태우고 콘크리트벽에 박아버린다
‘블랙 인페르노’=엄마가 아들을 차에 태우고 절벽으로 추락한다
‘실낙원’=엄마가 아들을 데리고 승강기에 타서 추락한다
아니, 기자 양반, ‘실낙원’에는 AI도 나오고 그런다던데 많이 다른 거 아니요, 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실낙원’의 장르적 특성을 고려해야 한다고 다시 한 번 말씀드려봅니다. 만약 장르가 로맨스라면, 결말은 남녀가 결혼하거나 안 하거나, 헤어지거나 계속 만나거나이고, 어느 쪽을 선택해도 시작과 과정에서 이야기의 승부를 볼 수 있습니다. 스릴러는 다릅니다. 스릴러에서 결말은 주제고, 주제는 완성도와 직결됩니다. 만들다보면 비슷한 부분 있을수도 있지, 할 수만은 없습니다. 게다가 연상호 감독처럼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감독 중 한 분에게는 자기 복제나 유사성에 대한 기준.이 상대적으로 높게 적용될 수 밖에 없습니다.
AI로 죽은 자식 다시 만나는 이야기는 물릴 정도로 보고 있습니다. 다작 중이신 고레에다 히로카즈도 했습니다. 6월에 개봉한 그의 영화 ‘상자 속의 양’에서도 엄마가 아들을 AI로 다시 만납니다. ‘상자 속의 양’을 시사에서 보고 처음 든 생각은 “포스터에 속았다”였습니다. 포스터에 나온 아이가 너무 예뻐서 뭔가 있을 줄 알았는데, 없었습니다. 근본적인 문제 의식은 예전 작품 ‘아무도 모른다’와 별반 다르지 않은데 등장 인물 중 하나를 AI로 설정만 한다고 해서 AI 영화가 되지는 않겠죠.
이야기가 고레에다 감독한테까지 갔는데, 왜 그러냐면, AI 이야기는 참 많이 나왔고, 나오고 있고, 당분간 나올 이야기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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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낙원’의 큰 기둥이 AI이고, 다른 기둥이 엄마의 충격적 결심과 그 결심까지 이르게 된 사정인데, 둘 다 남들이 했던 이야기라면 ‘실낙원’이 영화로서 가지는 예술적 개성과 정체성을 어디서 찾아야할까요. 관객이 좋아하고 지지하는 연상호라는 감독이 적당히 비슷한 이야기를 반복 생산한다면 관객은 어디다 맘을 둬야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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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연 감독이 다른 얘기도 했습니다. 최근작으로는 ‘얼굴’이 있네요. ‘얼굴’은 전 책이 훨씬 좋았습니다. 영화와 책이 결말이 미세하게 다른데, 영화 보기 전에 책을 보다가 마지막 한 장에 이르렀을 때 제가 만난 건 부끄러움이라는 거울이었습니다. 그래서 좋았습니다. 그런데 ‘블랙 인페르노’와 ‘실낙원’을 보고나니 “혹시 내가 몰라서 그렇지 ‘얼굴’도 어디 비슷한 작품 있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게 돼버렸습니다.
사족으로, ‘제이컵을 위하여’는 애플TV에서 드라마(2020)로도 만들었어요. 캡틴 아메리카, 크리스 에반스가 주연했습니다. 8부작인데, 이번 레터 때문에 봤습니다. 비추합니다. 무리하게 늘렸어요. 절반 이하로 줄였어도 충분했을텐데. 애플TV는 넷플릭스와 달리 배속 재생 기능이 없어서 참으면서 봤습니다. 레터 독자분께 하나라도 더 드릴 말씀이 생길까 해서. 결말도 소설과 다른데, 역시 별로입니다. 그놈의 ‘열린 결말병’이 여러 작품을 아쉬움의 골짜기로 떨어뜨리네요.
하늘 아래 새로운 게 없다고 하지만, AI가 대세인 세상, 다수와 평균값이 지배하는 세상이 될수록 AI가 내놓지 못하는 개성과 독창성의 가치를 추구해야 하는게 아닐까 해서 길게 말씀드렸습니다. 모든 예술, 영화 분야는 말할 것도 없겠고요. 연상호 감독처럼 자타공인 대한민국 대표 창작자면 더욱. ‘실낙원’이 불과 5억원으로 만든 저예산 영화라고 연 감독이 여러 번 말씀하셨는데 손익분기。을 훌쩍 넘기고, 그 힘을 보태 다른 작품도 계속 만드셨으면 좋겠습니다. 그 작품을 보고나서는 “와, 이런 얘기도 할 수 있구나, 역시 대단한 감독”하며 감탄할 수 있기를. 그럼 저는 다음 레터에서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영화는 세상의 창이고 호수이며 거울. 여러분을 그 곁으로 데려다 드립니다.
그 영화 어때 더 보기(https://www.chosun.com/tag/cinema-review/)
결말이 중요한 장르